지난달 26일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에서 폐기물 선별 작업을 수행 중인 ‘닥터 비(B) 인공지능 로봇’. 김민제 기자
컨베이어 벨트 위에 페트병과 비닐 등 각종 폐기물이 쌓여 있다. 그 위로 누군가 긴 팔을 뻗더니, 비닐을 골라 주운 뒤 컨베이어 벨트 밖으로 빼냈다. 선별 노동자의 작업 모습이 아니다. 딥러닝 기능이 장착된 로봇이 재활용 공정에 투입돼 폐기물을 솎아내는 장면이다.
인공지능이 폐기물을 종류별로 구분한다?지난달 26일 방문한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는 이러한 변화가 찾아온 선별장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선 하루 평균 55톤의 폐기물이 처리된다. 플라스틱, 유리, 알루미늄, 고철 등 종류도 다양하다. 사람의 손으로 부피가 큰 쓰레기를 먼저 거르고 이후부터는 기술이 투입된다.
‘닥터 비(B) 인공지능 로봇’은 그중 하나다. 이 로봇은 폐기물의 이미지 데이터를 입력받아 특성을 학습한 뒤, 이에 기반해 폐기물의 모양과 색깔을 감지하고 솎아낸다. 종이, 비닐, 알루미늄 등 58가지 항목을 구분할 수 있다. 딥러닝 기술을 장착해 폐기물을 접할수록 선별 능력도 올라간다.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에서 인공지능 선별 로봇이 폐기물 더미에서 검은색 플라스틱을 골라내고 있다. 김민제 기자
이날 로봇은 시운전을 끝내고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 실제 선별 공정에 투입된 상태였다. 로봇은 긴 막대 모양의 팔에 폐기물을 흡착하는 입구가 달린 모양을 했다. 내부에 탑재된 센서로 목표하는 폐기물을 포착한 뒤 팔을 뻗어 빨아들이고, 이를 컨베이어 벨트 밖으로 빼냈다. 배달·포장 용기로 주로 쓰이는 검은색 플라스틱과 과자 봉투로 보이는 비닐 등이 로봇 팔에 딸려 올라왔다. 입력된 값에 따라 선별해내는 폐기물의 종류도 달라지는데, 이날은 검은색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류를 선별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아직 로봇의 완성도는 떨어졌다. 로봇 팔로 폐기물 하나를 잡아내는 데에 2~3초가량이 걸렸다. 빠르게 이동하는 검은색 플라스틱 용기를 지나치거나 빨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가득 채운 폐기물의 양을 감당하기엔 벅찬 모습이었다. 기기를 개발한 ‘ACI 엔텍’의 김현수 대표는 “교육 환경에서 경험한 것보다 폐기물의 양이 워낙 많아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현장 업무를 막 시작한 신입사원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빛·바람으로도 폐기물 선별…재활용 산업은 진화 중도봉구 자원순환센터에 설치된 광학 선별기. 할로겐 불빛을 투과해 페트(PET)와 피이(PE) 소재의 폐기물을 걸러내고 있다. 김민제 기자
자원순환센터 한쪽에서는 바람이나 빛을 통한 선별 작업도 이뤄지고 있었다. 바람과 무게를 이용한 선별 기기인 ‘비중 발리스틱’은 폐기물에 강한 바람을 가해 가벼운 종이와 비닐 등은 위로 날아가게 하고 무거운 플라스틱은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광학 자동 선별기’는 근적외선과 가시광선 등을 플라스틱 폐기물에 투과하는 장비로, 소재별로 다른 반사율을 이용해 재질과 색상 등을 구분해냈다. 선별기 옆에 다가서자 수시로 할로겐 불빛이 번쩍거렸다. 페트(PET), 피이(PE·폴리에틸렌) 소재의 플라스틱 폐기물만 그밖의 폐기물과 다른 통로로 보내졌다. 한 데 뒤엉켜 있던 폐기물들은 비중 발리스틱, 광학 자동 선별기, 인공지능 로봇을 순서대로 거치며 재질 별로 점차 세분화됐다.
폐기물 재활용·선별업체 알엠(RM)에서 연구 중인 인공지능 선별 로봇 ‘리플비’. 알엠 제공
선별·재활용 전문업체 알엠(RM)도 최근 인공지능을 활용한 폐기물 선별 기계 ‘리플봇’을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자체 선별장에 설치했다. 리플봇 또한 딥러닝 기능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으로, 플라스틱의 이미지 데이터를 축적해 선별 작업을 수행한다. 현재는 페트병을 색깔별로 구분해내는 작업을 연습 중이다. 임성진 알엠 부회장은 “연구용으로 제작된 소규모 설비로, 연구 결과에 따라 실증화 여부가 정해질 것”이라며 “다양한 종류의 폐기물을 잡아낼 수 있도록 로봇의 손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효과 내려면…생산자 노력 동반돼야”이처럼 재활용 선별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재활용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올라가고 있다. 오종훈 환경부 생활폐기물과 과장은 “국내에서도 인공지능 선별 같은 재활용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사업 추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재활용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서 재활용 시장의 활성화, 재활용품의 고품질화 등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화한 기술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생산과 소비 단계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학 환경공학과 교수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제조업자가 복합재질의 플라스틱 포장재를 계속 생산해내고, 여러 종류의 폐기물이 혼합 배출된다면 그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새로운 기술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재활용이 용이한 방향의 생산 방식과 폐기물 관리 정책이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